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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장을 알면 월드컵 16강 보인다-3] 아모두 나이지리아 감독

가난.질병.기아의 대륙 아프리카. 희망이 없는 아이들은 축구에 인생을 건다. 축구로 성공해서 가족을 먹여 살리겠다는 절박한 꿈이 이들을 달리게 한다. 그 꿈을 이룬 아프리카 출신 스타는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다. 그러나 아프리카를 대표하는 지도자는 아직 없다. 나이지리아의 사령탑 샤이부 아모두가 도전장을 던진다. 하지만 결코 쉬운 싸움이 아니다. 한국은 내년 6월 23일 2010 남아공 월드컵에서 나이지리아와 격돌한다. B조 조별 리그 3차전이다. 2002년 한.일 월드컵 포르투갈전 2006 독일 월드컵 스위스전처럼 한국의 16강 진출 여부는 조별 리그 마지막 경기인 나이지리아와의 대결로 판가름이 날 가능성이 크다. #외국인 사령탑들이 이룬 꿈 아프리카가 세계 축구 무대에서 유럽과 남미를 넘보는 '제3 세력'으로 자리 잡은 지도 벌써 20여 년이 지났다. 카메룬은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에서 8강에 올랐다. 그 뒤를 이은 게 나이지리아다. 94년 미국 월드컵과 98년 프랑스 월드컵에서 잇따라 16강 고지를 돌파했다. 그 사이 열린 96년 애틀랜타 올림픽에서는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그때마다 나이지리아의 '꿈'을 이끈 사령탑은 외국인이었다. 94년 미국 월드컵 때는 네덜란드인 웨스터호프 98년 프랑스 때는 지금은 멕시코로 국적을 바꾼 유고슬라비아의 '싸움개' 보라 밀루티노비치가 '수퍼 이글스'를 지휘했다. 나이지리아는 2002년 한.일 월드컵 때 사상 처음 자국 출신 오니그빈데를 선택했지만 결과는 조별 리그 탈락이었다. 2002년 나이지리아는 아르헨티나.잉글랜드.스웨덴이 포진한 죽음의 조에서 살아남지 못했다. 2002년 한.일 월드컵에 이어 나이지리아는 다시 한번 자국인 감독 아모두를 선택했다. 남아공 월드컵에 출전하는 아프리카 6개국 중 나이지리아를 제외하고는 모두 감독이 외국인이다. #4전5기 오뚝이 아모두 감독은 이번 외에도 1994~95년 98~99년 2001~2002년 등 이미 세 차례나 나이지리아 대표팀 감독을 맡았다. 처음 두 번은 월드컵이 끝난 후 외국인 감독이 물러나면 설거지를 하며 팀을 리빌딩했다. 2001년에는 한국 감독을 역임하기도 했던 요하네스 본프레레의 후임으로 지휘봉을 잡았다. 하지만 2002년 초 아프리카 네이션스컵에서 "3위밖에 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경질당했다. 지난해 4월 감독에 부임한 그는 아프리카 예선 2라운드에서 6전 전승을 거뒀다. 3라운드도 3승3무를 거두며 무패로 본선에 올랐다. 어떻게 보면 허정무 감독과 닮은 구석도 적지 않다. 허 감독도 아모두처럼 이전에 대표팀에서 낙마한 아픔이 있다. 나이리지아와 마찬가지로 한국 역시 한국 감독이 지휘해서 16강에 올라간 적이 없다. #자리를 지켜낼 것인가 아모두의 입지는 벌써부터 흔들리고 있다. 얼마 전부터 거스 히딩크 감독 이탈리아의 명장 로베르토 만치니 등이 사령탑으로 갈 것이라는 루머가 떠돌고 있다. 현지 언론에는 나이지리아 축구협회가 "다음 달 열리는 네이션스컵에서 4강에 못 들 경우 물러나야 한다"는 최후통첩을 했다는 뉴스까지 나왔다. 축구협회는 "아모두는 남아공 월드컵에서 사령탑을 맡은 유일한 아프리카인이 될 것"이라고 즉각 반박했지만 감독 자리를 둘러싼 내부 갈등이 치열한 양상이다. 게다가 '수퍼 이글스'의 간판 스타인 은완코 카누(포츠머스)는 예선 기간 "아모두 체제로는 월드컵 본선에 못 간다"고 비난해 갈등을 빚고 있다. 이 역시 아모두 감독에게는 커다란 짐이다. 샤이부 아모두는… ● 생년월일 : 1958년 4월 18일(51세) ● 지도자 경력 : 비시시 라이언스(나이지리아리그·1989~91), 엘-카네미 워리어스(나이지리아리그·91~92), 나이지리아 대표팀(94~95), 올랜도 파이리츠(남아공리그·96~97), 나이지리아 대표팀(98~99·2001~2002), 샥스FC(나이지리아리그·2003~2005), 나이지리아 대표팀(2008~) 이해준 기자

2009-12-09

[적장을 알면 월드컵 16강 보인다-2] 디에고 마라도나 아르헨티나 감독

세계는 그의 발끝에서 축구의 황홀경을 맛봤고 그의 기행에 인생무상을 느꼈다. 디에고 아르만도 마라도나(49). 다시는 그라운드에서 그를 못 볼 줄 알았다. 마약 복용에 고도 비만 심장마비로 사경을 헤맸던 그는 위 절제 수술을 받고 다시 돌아왔다. 기존의 규범이 싫어 비주류의 길을 자청했던 이 자유주의자는 제도권으로 돌아와 남아공에서 또 한번 일탈을 꿈꾼다. 기성복처럼 특색 없는 현대축구에서 벗어나 향수 어린 남미의 공격축구로…. # 허정무와의 악연 1986년 멕시코 월드컵에서 허정무가 마라도나를 거칠게 수비하는 장면을 두고 외신은 '쿵후킥'이라는 표현을 썼다. 허 감독은 당시를 생생히 기억한다. 한국은 전반 18분 만에 이미 두 골을 내줬다. 모두 마라도나의 어시스트였다. 대책이 필요했다. 벤치의 김정남 감독은 마라도나의 전담 마크맨 김평석을 빼고 조광래를 투입했다. 그리고 미드필드에 있던 허정무를 수비로 내려 마라도나를 맡겼다. '진돗개'라는 별명답게 허 감독은 마라도나를 물고 놓아주지 않았다. 그는 "마라도나와의 대결을 앞두고 사실 겁이 많이 났다. 경기 내내 약을 바짝 올렸다. 그 방법 밖에 없었다"고 회상했다. 80년대 초반 네덜란드 에인트호번에서 뛸 때 요한 크루이프를 꽁꽁 묶어 현지 언론의 찬사를 받았던 그였다. 허 감독은 "당시 크루이프는 은퇴 직전이었다. 게다가 나의 도발에 신경질적으로 반응하면서 스스로 무너졌다. 하지만 마라도나는 달랐다. 심한 파울을 당해도 잠시 짜증을 냈을 뿐 곧바로 경기에 집중했다. 역시 대선수였다"고 말했다. # 메시에 투영된 마라도나의 향수 마라도나 은퇴 후 아르헨티나에는 수많은 '제2의 마라도나'가 등장했다. 모두 언론과 팬들이 붙인 별명이었다. '후계자 선임'에 인색한 마라도나도 리오넬 메시(22.바르셀로나)를 보고 눈이 번쩍 뜨였다. 메시는 '원조'로부터 공인받은 유일한 '제2의 마라도나'다. 마라도나는 메시의 플레이에서 자신의 모습을 봤다. 메시와 함께라면 월드컵 우승도 가능할 것 같았다. 그래서 대표팀 감독에 그토록 욕심을 낸 것이다. 하지만 유럽에서 이름을 날리는 메시도 아르헨티나 대표팀에서는 작아진다. 소속팀 바르셀로나와 대표팀에서의 역할이 다르기 때문이다. 바르셀로나에서는 오른쪽 측면 공격수를 맡으면서도 위치를 가리지 않고 자유롭게 전방을 누빈다. 이니에스타 사비라는 걸출한 미드필더의 도움도 크다. 반면 대표팀에서는 외롭다. 리켈메마저 떠난 지금 메시를 받쳐줄 조연이 없다. 플레이메이커 겸 처진 스트라이커로서 팀 공격을 풀어내야 하는 메시의 부담이 크다. 제아무리 메시라 하더라도 압박의 강도가 약했던 80년대 대여섯 명을 제치고 골을 넣던 마라도나의 모습을 재현할 수는 없다. 메시라는 보물을 손에 쥔 마라도나 감독의 숙제다. # "날 간섭하지 말라" 감독이 됐지만 여전히 그는 독불장군이다. 아르헨티나 축구협회는 지도자 마라도나의 경험부족을 메우기 위해 명장 카를로스 빌라르도를 총감독으로 선임했지만 마라도나는 그를 벤치에도 앉지 못하게 한다. 지난 9월 브라질과의 홈경기 장소가 리버 플레이트의 홈구장으로 정해지자 로사리오로 변경했다. 친정팀 보카 주니어스와 원수지간인 리버 플레이트 경기장은 죽기보다 싫었기 때문이다. 전 세계 수많은 축구 전문가도 마라도나의 축구 색깔을 정의하지 못하고 있다. 압박과 역습으로 통일돼 가는 현대축구의 흐름에서 벗어나 있기 때문이다. 이웃 나라 브라질도 개인기를 버리고 조직을 선택했다. '전술이 없다'는 마라도나의 축구는 조직보다 개인이 우선이다. # 허정무팀의 공략법 아르헨티나 팬임을 자처하는 김호 전 대전 감독은 "지금 아르헨티나의 문제는 수비에 있다. 수비는 공격의 시작이다. 수비가 약해지면서 공격으로의 전환도 느려졌다. 수비 없이 월드컵 우승은 무리"라고 진단했다. 아르헨티나의 미드필드와 최전방 라인은 세계 정상급이다. 하지만 세대교체에 실패한 수비라인은 경기 때마다 선수 구성이 바뀌고 있다. 공격수 출신인 마라도나의 한계이기도 하다. 김대길 KBS N 해설위원은 "아르헨티나는 남미 예선 때 고지대 원정에서 고전했다. 아르헨티나와 경기를 치를 요하네스버그가 1753m 고지대다. 체력전으로 승부할 필요가 있다. 측면 수비수인 에인세나 사네티가 노장이라 기동력이 떨어진다. 측면 공략에 성패가 달렸다"고 분석했다. 디에고 마라도나는 ● 생년월일 : 1960년 10월 30일(49세) ● 별명 : 악동.풍운아 ● 지도자 경력 : 만디유 데 코리엔테스(아르헨티나 4부리그.1994) 라싱 클럽(1부리그.1995) 아르헨티나 대표팀(2008~) ● 선수 경력 : 아르헨티노 주니어스(1976~81)-보카 주니어스(1981~82)-바르셀로나(1982~84)-나폴리(1984~91)-세비야(1992~93)-뉴웰스 올드보이스(1993)-보카 주니어스(1995~97) ● 주요 수상 경력 : U-20 월드컵 골든볼(1979) 멕시코 월드컵 골든볼(1986) FIFA 팬 선정 20세기 최고의 선수 장치혁 기자

2009-12-08

[적장을 알면 월드컵 16강 보인다-1] 오토 레하겔 그리스 감독

하지만 축구에서도 감독의 리더십과 전략이 승패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친다. 감독이 누구냐에 따라 팀 컬러가 180도 달라진다. 허정무 감독은 2010 남아공 월드컵에서 "그리스.아르헨티나.나이지리아 등 상대국에 따라 맞춤형 전술을 짜겠다"고 말했다. 그 첫 걸음은 상대 감독의 전술과 스타일을 읽는 것이다. 3회에 걸쳐 B조 감독들을 집중 분석한다. 선수 땐 거칠기로 유명한 수비수였다. 선수보다는 감독으로 더 높은 명성을 쌓았다. 26년간 독일 분데스리가에서 감독으로 이름을 떨쳤고 2001년부터 그리스 대표팀을 지휘하고 있다. '분데스리가의 아이' '킹 오토' '레하클레스(레하겔+헤라클레스)' 등 별명도 많다. 악명 높은 독재자 열정을 불어넣는 선동가 푸근한 옆집 아저씨 등 다양한 개성을 지닌 오토 레하겔. 이 노회한 감독이 이끄는 그리스는 한국이 16강 진출을 위해 반드시 넘어야 할 산이다. 한국은 내년 6월 12일 그리스를 상대로 조별 리그 첫 경기를 치른다. #"가장 현대적인 축구? 이기는 축구지" 독일 출신 레하겔 감독은 올해 71세다. 2010 남아공 월드컵에 출전한 32개국 감독 가운데 최고령이다. 축구 비평가들은 나이만큼이나 그의 축구도 늙었다고 투덜댄다. 그는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에서 유행했던 리베로 시스템을 여전히 사랑한다. 단조로운 측면 공격에 이은 헤딩 공격은 레하겔 축구의 주요 공격 루트다. 유로2004(유럽축구선수권)는 이름에 걸맞지 않게 재미없는 대회가 돼 버렸다. 그리스가 시대에 뒤떨어진 축구로 우승을 차지했기 때문이다. 수비 위주로 꽁꽁 문을 걸어 잠근 그리스는 빠른 역습을 통한 측면 돌파로 포르투갈.프랑스.체코 등 유럽의 거함들을 잇따라 쓰러뜨렸다. 포르투갈과 결승전에서는 단 한 개의 유효 슈팅을 골로 연결하며 1-0으로 승리해 우승컵을 품었다. 그리스는 '독일보다 더 독일다운 효율적인 축구를 하는 팀'이라는 평가를 받았고 레하겔 감독은 "이기는 축구가 가장 현대적인 축구다"라는 명언을 남겼다. #오토크라시 선수들과 구단 직원들은 오토 레하겔의 팀 운영을 '오토크라시(Ottocracy)'라고 칭한다. 독재라는 뜻의 '오토크라시(Autocracy)'와 발음이 똑같은 것을 레하겔의 성격에 빗대 부르는 것이다. 레하겔 감독은 선수단뿐만 아니라 구단 구석구석까지 자신이 컨트롤하는 것을 즐긴다. 자신이 원하는 구조를 만들기 위해 구단과 마찰을 빚는 것도 서슴지 않는다. 96년 바이에른 뮌헨 감독 시절 보르도(프랑스)와 UEFA컵 결승전을 불과 나흘 앞두고는 당시 구단주였던 베켄바워와 갈등을 빚어 해고되기도 했다. 분데스리가 최고의 명문 구단에서 쫓겨난 그는 곧바로 2부 리그 카이저슬라우테른을 맡았다. 그가 지휘봉을 잡은 후 카이저슬라우테른은 1년 만에 1부로 승격했다. 98년에는 승격 첫해 분데스리가에서 우승을 차지하는 기적을 만들었다. 분데스리가 역사에서 전례 없는 사건이었다. 그는 26년 동안 독일에 있으면서 분데스리가 3회를 포함해 모두 여덟 번 우승을 만들었다. 그는 2001년 그리스 감독으로 부임한 뒤 9년째 장기집권하고 있다. 2006년 독일 월드컵 본선 진출에 실패한 데 이어 유로2008에서도 조별 리그에서 탈락했지만 그리스축구협회는 레하겔의 '오토크라시'에 변치 않는 지지를 보내고 있다. 그리고 레하겔은 다시 2010 남아공 월드컵 진출이라는 성과를 냈다. #선수들 가슴에 불을 지른다 팀 운영에는 철권을 휘두르지만 그는 인간적인 매력도 풍부한 사람이다. 차두리(프라이부르크)는 그를 두고 "나를 부를 땐 언제든 '얘야 얘야'라고 말하는 맘씨 좋은 옆집 아저씨 같은 사람"이라고 평했다. 카이저슬라우테른 감독 시절 외국인 선수를 규정을 초과해 교체 투입한 후 허둥대는 모습은 요즘도 분데스리가의 재미있는 장면을 보여줄 때마다 나오는 신이다. 이처럼 덜렁대는 면도 있지만 독일 사람들은 이런 점을 '인간적'이라며 좋아한다. 레하겔의 가장 큰 장점은 선수들로 하여금 "저 감독을 위해서라면 죽어도 좋다"는 마음을 갖게 하는 동기 부여 능력이다. 유로 2004에서는 33세의 노장이었던 테오도르 자고라키스가 중원을 누비며 팀을 지휘했다. 한물간 선수로 여겨졌던 자고라키스가 마지막 불꽃을 태운 덕분에 변방의 그리스가 유럽의 중심에 설 수 있었다. 이번에는 32세의 노장 카라구니스에게 주장 완장을 채웠다. 중앙 미드필드에는 신예보다 경험 많은 노장을 기용하는 게 레하겔 감독의 오랜 습관이다. #레하겔 축구를 깰 비책은 레하겔 감독은 수비수를 발탁할 때 기술보다는 체격을 우선시한다.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리버풀에서 활약하는 중앙 수비수 키르지아코스는 1m93㎝의 장신이다. 파파도폴로스도 1m88㎝다. 이들이 가담하는 세트피스는 위력적인 공격 루트가 된다. 골문 가까운 곳에서 헤딩을 막기 위해 한국 수비수들은 수적 우위와 좋은 위치를 확보하는 게 중요하다. 그리스는 유럽 예선에서 10전6승2무2패를 기록했다. 10경기를 치르는 동안 21골을 터뜨렸고 오른쪽 공격수 게카스(레버쿠젠)는 그중 절반에 가까운 10골을 넣었다. 게카스를 중심으로 공격이 전개되는 방식에 철저히 대비해야 한다. 오토 레하겔은 ■ 생년월일 : 1938년 8월 9일(71세) ■ 국적 : 독일 ■ 별명 : 오토 대제(King Otto)·레하클레스(레하겔과 그리스 신 헤라클레스의 합성어) ■ 지도자 경력 : 오펜바흐(74∼75년), 베르더 브레멘(76년·81∼95년), 도르트문트(76∼78년), 빌레펠트(78∼79년), 뒤셀도르프(79∼80년), 바이에른 뮌헨(95∼96년), 카이저 슬라우테른(96∼2000년·이상 독일), 그리스대표팀(2001년∼현재) ■ 주요 우승 : 유러피언 컵위너스컵 1회(92년), UEFA컵 1회(96년), 분데스리가 3회(88·93·98년), 독일컵 3회(80·91·94년), 유로 2004(2004년) 이해준.최원창 기자

2009-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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